15세기 말부터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들이 북부 이탈리아의 궁정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활약하던 이탈리아 작곡가들은 시를 낭송하면서 즉흥적인 반주를 하던 전통에서 유래한 세속노래인 프로톨라를 만들었다. 프로톨라는 통상적으로 류트나 리라 다브라초의 반주로 불리는 솔로 노래로 마드리갈이 성행하기 전인 1470년에서 1530년까지, 특히 만토바-베로나-베네치아-페라라 같은 북부 이탈리아 궁정을 중심으로 주로 귀족들이 즐기던 세속노래였다. 프로톨라는 가사의 여러 절이 제1절에 붙여진 선율을 반복하는 유절식 노래로 주로 사랑을 노래하거나 풍자적이며, 대체로 문학적 가치는 거의 없는 경박한 수준의 가사를 사용했다. 음악적으로는 단음적으로 되어 있는 단순한 양식의 노래로, 네덜란드 샹송의 복잡한 대위적 양식과 샹송의 가사들이 전반적으로 너무 심각한 데 대한 반발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중요한 세속노래였던 마드리갈은 프로톨라 가사의 경박한 분위기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드리갈의 탄생은 당시 이탈리아의 문학적 풍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베네치아의 시인이지 문학 비평가였던 추기경 벰보(1470-1547)가 1501년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1304-74)의 시집을 출판했는데, 이는 당시의 시인, 작곡가와 일반 독자들에게 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벰보는 페트라르카의 시의 분석을 통해 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효과를 발견했고, 그 결과 작곡가들은 시의 음악적 효과는 물론, 가사의 의미를 그대로 생생하게 살린 음악을 만들고자 시도하게 되었다. 이로써 가사와 음악은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밀접하게 관련되게 되었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16세기의 마드리갈이었다. 초기 마드리갈은 주로 4성부였으나, 16세기 중반 이후에는 5성부가 일반적이 되었고, 때로는 8성부나 10성부의 곡도 있었다. 마드리갈은 합창곡이라고 하기보다는 작은 그룹의 성악 앙상블을 위한 음악으로, 한 성부에 한 사람씩 담당한다. 물론 이후의 마드리갈은 기악 반주가 함께 나오기도 했지만, 통상적으로는 무반주로 노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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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4.25 Martino Pesen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