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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의 노래

들꽃 음악 2012. 2. 29. 00:48

 



1940년 8월 스물 다섯 살의 학생 한 사람이 고국 스위스를 떠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부 프랑스 지역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그는 장차 하느님이 그에게 보내실 사람들과 더블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눌 공동생활을 위해 집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의 여러 민족들이 서로 무참히 죽이고 있던 그 순간에 그는 소수의 사람이나마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뢰와 나눔 그리고 화해의 소명을 간직하고 있다는 분명한 징표가 보여줄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느낀 이 메시지를 지체없이 실천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가 중세 유럽의 가장 큰 수도원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고도 끌뤼니에 도착했을 때, 근처 마을에 집이 하나 나와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이 마을을 찾아가 집 구경을 한 뒤 무언가 요기를 하기 위해 길로 나와 두리번 거렸다. 마을은 집이 몇 채 되지 않는 조그만 촌락이었고 그나마 일부는 폐허가 된 채 버려져 있었다.

한 할머니를 만나 어디서 먹을 것을 좀 살 수 없겠느냐고 묻자 마을에 가게라고는 없다고 대답한 이 할머니는 자기 식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도록 그를 초대했다.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의 계획을 들은 할머니는 "젊은이, 여기에 머물도록 하게, 우리는 가난하고 외롭다네" 하면서 그를 붙잡았다. 이 몇 마디 말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는 마을 한켠에 동떨어진 그 집을 사기로 결정했는데, 부르고뉴 남쪽에 위치한 이 마을 이름이 바로 "떼제"였다.

이렇게 떼제 공동체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이 날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뜻에 따라 나아가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자신의 나라 스위스를 떠나야 한다는 단순한 확신을 가졌던 이 젊은이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로제 형제'로 알려져 있고 그가 도착했던 조용한 마을 떼제는 이제 매년 온 대륙으로부터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이 자신들에게 주시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모여 드는 기도와 만남의 중심지가 되었다.

떼제 공동체는 수십년 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성장했다. 그곳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도움이나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신및 육체 노동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로제 수사는 그 안에 깊은 지혜가 담겨 있음을 알았고 공동체는 처음부터 그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선물이나 기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해서 번 것으로 살아 왔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는 토지도 소유하지 않았으며 자본도 축적하지 않았다.

매년 70~80개국으로부터 수만 명의 순례자들이 떼제의 언덕에 모인다. 보통은 일주일 단위 프로그램에 참석하는데 어떤 젊은이들은 2~3개월 머무르며 그곳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깨달음을 얻는다. 

 


 



떼제의 노래는 이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로제 수사는 짧은 말마디를 반복하여 부를 때 그것이 어느 나라 말이든지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충분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짧은 노랫말을 불어나 영어, 폴란드어나 라틴어로 반복해서 부르는 동안 수사들은 십 여개 나랏말로 독창을 첨가한다. 기도 때마다 잘 선택된 짧은 구절이 10여 개 나랏말로 봉독된다. 그리고는 기도 시간 한 가운데10여분 동안 완전한 침묵이 이어지는데 이 침묵이야말로 떼제의 기도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수사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나아가 더 많은 방문자들, 나아가 주교들과 추기경들이 함께 바닥에 끓어앉거나 그냥 앉은 채 한참 동안 침묵 가운데 묵상할 때 모든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무너지고 오직 하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각자의 마음 안에서 울려 퍼진다.

 

마니피캇 [Magnificat] 마그니피카트라고도 한다. '우러러 받들다'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의 찬가이다. <누가 복음서> 중 1절 - 내 영혼은 주를 우러러 받듭니다" 에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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