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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오늘은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앤 나와 함께 그분의 슬픔을 함께하지 않겠니

낯선 나라  미지의 소녀인 너를
다시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네가 좋아하는 꽃처럼 그분이 이땅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주었기 때문이란다.
우리에게 당연시되는 그 모든것은
그냥 이루어진 법은 없었으니까 ...
힘들었던 오늘을 내려 놓고 너와 함께 기도한다.


앤(ANNE)을 다시 만나던 날 2009 8 18



1997년 IMF를 맞으며 휘몰아 닥친 구조조정에 내가 모시던 부장님과 선배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그날에 대한 기록은 당시 회사 다이어리에 기록되어 있으며 난 가끔 그것을 들여다 볼 때마다 그때 왜 내가 그분들을 대신할 수 없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모두 어려운 시기에 회사를 위해 몸을 바쳐 희생했었고, 그것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그리고 그들 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것이 아무리 불가항력적인 일이였다고 하더라도 남아있는 내 자신에게 늘 부끄러웠다.

부서가 통합되고 그것으로 담당 부서장도 바뀌었다. 새로온 부장은 나름대로 살아 남는법(?)을 알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 시기가 아마도 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지 얼마 되지 않는날이었다. 15대 대통령은 내가 선택한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아~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가! 그러나 그 당시 새로 부임한 부장은 늘 그랬었다. 빨갱이 대통령 들어섰다면서 아침 커피타임과 저녁 퇴근시간이면 늘 자기 자리에서 지렁이 기어가는 중얼거림으로 그분에 대한 비방으로 가득했었다. 정말 그것은 한두번도 아니고 난 도저히 그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소름돋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어느날, 난 그 부장에게 내 자리 내놓으며 말했다. 그때 내 직함 대리 -


그 당시 사무실에 있던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나는 격한 흥분된 상태였고,  어쩌면 그것은 그 동안 부장에게 쌓였던 일에 대한 감정이 견디지 못하고 동시에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나의 동료들에게 저 부장이 먼저 나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나가게 될거라고 했을 만큼 나는 그를 늘 경멸했었다.

그 후로 나는 그와 같은 선상에 있는 집단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알게모르게 회사 생활이 순탄치는 않았다. 아니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그들은 내가하는 일에 언제나 태클을 걸었고 그것은 내가 회사를 퇴사 할때까지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한 후회 한번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더 반박하지 못한 나의 무지를 원망했다. 그들이 나에게 업무에 대한 압박을 가해오면 올수록 나는 더욱더 모진 마음을 먹고 보란 듯이 내가 맡은 일들을 하나하나 채워 나갔고 그들이 하지 못한 일들을 개혁해 나갔다. 그들과의 관계는 나에게 스스로의 채찍이 되어 홀로 일을 배우고 습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때 기획하고 쌓아올린 프로젝트와 포트폴리오들은 훗날에 회사 매뉴얼이 되어 다른 부서에서도 효율적으로 사용되어 표창도 받고 본사 담당부서에서 나를 원해 승진 발령을 낼려고 했으나 그것조차 그들에게 걸려 그곳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그들 말로는 내가 꼭 필요해서라고 했지만 난 그 말을 끝내 믿진 않았다.

그리고 내가 12년동안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던 겨울날 - 그날 모질게 몰아치는 추위와는 다르게 나는 많은 사람들과 따뜻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뒤로하며 그곳을 떠났다.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내 젊음을 바친 그곳을 떠나면서 나는 그 부장과는 악수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것은 아주 잘한 일 같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세월속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고 더러는 나를 좋아하는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더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나는 그들과 더블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더 아름답게 만들며 살아갈 수 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은 일들을 하나하나씩 만들며 쌓아올린 그런 기쁨의 성은 결코 잊을 수 없으며 아침이 올때까지 사무실에서 홀로 지새던 많은 날들은 내세울 것 없지만 지금의 행복한 나를  만들어준 밑거름이 되었다.

그제밤 늦더위에 잠못이루며 깨었을 때 창가에 내려앉은 눈썹달과 그 옆에 작은 별하나를 보았다.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그 모습이 어찌나 희미하고 쓸쓸해보이던지 나는 그것을 마음으로 찍는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예쁘게 찍어 내 마음 사진관에 언제까지나 퇴색되지 않을 모습으로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나는 그분의 서거 소식을 접하며 내가 그 새벽에 본 별이 그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갈때면 꽃나무를 하나씩 집으로 들인다. 퇴근길에 자주가는 화원에서 “줄리아페페”를 가슴에 안고 한낮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도로를 달렸다. 얼마전 주문한 “빨강머리앤”은 경비실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한손에는 “줄리아페페”, 다른 한손에는 조금은 무거운 빨강머리앤과 함께 집으로 올랐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땀에 젖은 몸은 씻지도 않고 줄리아페페는 이전에 노무현 대통령님과 헤어졌을 때 만난 꽃기린옆에 두고 빨강머리앤은 그 옆에 두어 모두가 외롭지 않게 했다. 물론 그 외로움중에는 다가오는 가을에 내가  맞아들여야 외로움에도 있다.

나는 빨강머리앤처럼 각각의 나무와 꽃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해주고 그것들로 하여금 더 아름답고 싱그러워질수 있도록 가꾸는 일들을 해 나감으로서 꽃이 어떻게 예쁘게 피며 잎은 어떻게 잘 자라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을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사소한 일기장에 적을 것이다. 또한 너무 자라난 줄리아페페의 잎줄기는 하나씩 따다 빨강머리앤 북마크로 쓸것이며 꽃기린의 꽃잎은 일기장에 뿌려놓을 생각이다.

앤(ANNE)이 나에게 오던날 그분은 떠나셨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은 아주 큰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울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안다. 가만히 두어도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꽃은 없다는 것을, 하다못해 아무도 돌보지 않을 것 같은 들꽃도 하늘과 자연이 알맞은 햇살과 양분으로 늘 가꾸어준다. 내가 사랑했던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란 그렇게 크고 거창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소중한 민주와 자유를 언제나 내가 가꾸는 꽃들과 함께 그 푸르름이 영원히 시들지 않도록 늘 가꾸는 것이며 그것으로 그분이 뜻하고자 했던 그 모든 일들이 진정으로 꽃필 수 있도록 나는 그것을 일구는 작은 농부가 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먼훗날 내가 이 세상을 마칠 때 나는 지고 없어도 그분과 내가 가꾸어둔 그 모든 것들이 그분 삶이었던 “인동초” 처럼 늘 푸르기를 나는 소박하게 바랄뿐이다.

사랑이란 헤어질 때 그 깊이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제가 님과 함께 살았으나 그 사랑을 모르고
지나간 시절에 님과
함께 살았던 지금의 제가 너무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내가만든선물 2009 8 19



난 네가 보니라고 지어준 애플 제랴늄을 바라보던 모습이 참 예쁘더라.

모두가 함께 있는 이 자리 -  모두 모두가 외롭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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